글항아리/독서

김훈의 <칼의 노래>

mylim 2007. 4. 23. 12:40

김훈이 쓴 <칼의 노래>는 몇년 전에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기간에 읽은 것으로 보도되어 세간에 더욱 유명해졌던 소설이다.

 

역사는 국가의 기록이지만, 한 개인이 역사를 쓸 수 있음을 보여 준 주인공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춤무공은 전쟁중에 일지를 기록하여 <난중일기>을 남겼고 그 기록은 잠들지 않고 현대에 이 소설로 다시 부활했다. 칼의 노래는 사건에 덮히기 쉬운, 개인 이순신이 어떻게 숨쉬고 생각했었는지를 독자에게 전해 준다. 그의 뒤척이는 신음소리와 고통, 고뇌, 그리고 적에 대한 분노와 연민, 그런 것을 예리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은 접속사가 안보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물처럼 흐른다는 것이 독특하고 신기해 보였다.

 

소설을 읽은 후, 두 페이지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그것은 권력 앞에 생명이 오가던 이 순신 자신의 현실과, 그리고 백성의 현실을 잘 나타낸 것 같았다.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임금은 울음과 언어로써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장려한 교서를 내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 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 올 단 한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 닥쳤다. ...끼니는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간에 ,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끼니들이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군량없는 수영을 밟고 지나갔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 그들 스스로 조선 침략을 후회하게 만들었던 충무공의 존재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노량대전의 춤무공의 전사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지만, 이 소설의 작가는 그의 죽음을 치밀하게 의미있게 전개하고 있다. 이 소설은 읽는 동안 역사적 존재를 마치 곁에 있는 듯 가깝게 만든다. 그리고  매일 만나는 끼니에 관해서, 권력과 칼의 의미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