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독서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읽고

mylim 2007. 12. 18. 10:56

2007년 이상 문학상 대상과 우수작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은희경>와 우수작 <빗 속에서-공선옥> 두 작품은 모두 여성이 쓴 것으로, 현대의 흔들리는 가정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대상인 <천사는 여기 머문다>의 주인공 인희는 작은 건설회사에 다니던 어느 날, 장모님 병으로 인해 아내와 아이들을 지방에 두고 혼자서 생활하는 모경이란 남자에게 '조용하면서도 분명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모경은 일년 후 이혼했다. 인희는 '멀쩡한 남자를 후려 가정을 박살낸 여자'라는 구설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모경과 결혼했다. 그러나 모경의 의심이 가미된 그들의 신혼은 '봄꽃피는 계절에 황사바람 부는 것 같이 깔끄럽고 부연 신혼이었다'고 표현한다. 폭력이 더해지는 생활을 삼년 보낸 뒤 인희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혼사유는 피로였다. ' 산더미만한 피로, 무덤 같은 피로, 증오같고 원한 같고 뼈저린 후회같고 타버린 재 같은 피로...."

 그 후, 재결합을 원하는 모경을 향해 인희는 물건을 내던졌고, 그  깨어진 유리잔해를 보며 그처럼 부서진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다. 독일사는 언니의 소개로, 인희는 직장생활에 비유되는 그런 결혼을 원하는 독일인 하인리히와의 만남을 앞두게 된다. 인희는 생각한다.  '...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깊은 마음을 제 속에 간직한 채, 아이도 만들지 않고, 친척도 없이, 나로인해 아무 상처 받는 사람도 없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이루려는 것 없이 함께 살아가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내일 만날 때 입고 갈 블라우스를 밤에 실로 꿰매다 바늘로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게 된다. 그 만남을 앞둔 주인공의 심정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블라우스) 그 아래와 등부분을 계속 기웠다. 몸판의 앞뒤가 붙어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

 

 <빛속에서>는 대안학교를 보낸 아들과 유방암 수술을 한 아내가 있는 남자가 줄거리를 이끌어 간다. 대안학교를 보낸 아들은 담임선생님 앞에서 담배를 피웠고 아내는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술을 받은 후 그 후유증이 있다. 형은 농사를 접고, 소도시에서 장사를 시작한 후 전재산에 가까운 차가 원인모를 방화에 의해 타버렸다. 그로 인해 장사라고는 모르시던 부모가 국도변 포장 노점에서 옥수수를 팔게 되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어 차 방화사건을 하소연하다 술기운에 전화에 욕을 했던 형은 경찰을 피해 도피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사방이 숨이 막힐 듯한 주인공인 남자의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30대 후반의 아직은 턱수염 파란 회사원에서 40대 중반의 무직자가 되는 동안, 풍성한 가슴을 가진 유순했던 내 아내가 민가슴이 되어 히스테리성 우울증으로 하루하루 무너져 가는 동안. 작은 새 같았던 내 아이가, 시골 오토바이를 훔쳐서 설익은 반항심을 키워가는 동안.'

 

어느 날  남자는 장을 보러 간 곳에서, 과장시절에 함께 근무했던 오향이라는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아파트에 잠시 들렀고 남자는 장을 본 자신의 야채마대를 생각하면서 서둘러 그 아파트를 나왔다. 그 날 이 후, 남자의 어지러운 심정은 날씨에 담겨 있다.

' 날씨는 잔뜩 흐리다. 태풍이 북상 중이라더니, 가로수들이 바람에 설렁설렁 거린다. 간판들도 덜걱거린다. 청과물 상회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배추를 덮어 놓은 비닐이 공중으로 획 솟구친다. 닭전 머리의 닭들 벼슬들이 파르르파르르 떨린다...'

 

폭우가 오는 밤, 다시 오향이의 아파트를 찾은 남자는 그녀의 아파트 문앞까지 가서, 들고 갔던 과일봉지를  현관문 손잡이에 걸고는 돌아온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내려가 있었다. 나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계단 참에서 흘낏 과일 봉지가 대롱거리는 향이 집 문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다시 돌아 볼 것은 못되는 것 같았다. 나는 급기야 계단을 뛰기 시작했다.....나는 격렬하게 요동치는 와이퍼를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손잡이에 걸어두고 온 과일 봉지가 부디 향이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되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빗속에서의 주인공 남자는 결국 과일봉지를 매개로 한 부도덕한 선택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은 ' 넘쳐나는 빗물들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도시의 길 위에서 마구잡이로 요동쳤다.'라는 부분에서 보여준다 . 공선옥의 소설은 한 가족이 무너지기 쉬운 요인들을 뛰어난 필체로 전개하고 있다.

 

두 작가의 소설은 모두 가정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고, 이 가정을 지키는 것이 도덕과 무관하지 않음을 내비친다. 대상작<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빗속에서>보다 자신의 내면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멀쩡한 가정을 후려낸 여자로서 출발한 주인공 인희가 한 과거 선택에 대한 후회와  새 선택앞에서의 고뇌와 아픔을 동시에 피와 빛으로 마무리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소설 중에서 <빗속에서>는 친근한 소재로써 공감대를 충분히 일으키는 장점이 있고, <천사는 여기 머문다>는 읽는 이에게 바늘에 찔리는 아픔과 함께 되돌아 보게 만들수도 있는, 그리고 그 아픔 속에 천사가 머문다는 위로를 담고 있다. 결국 두 작가의 메시지로 가는  <과일 한 봉지>와 <피와 빛>가운데 심사 위원은 후자를 좀더 비중있게 본 것 같다.  내 개인적으로는 공선옥의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 더 마음에 든다.

 

'나는 내가 손잡이에 걸어두고 온 과일 봉지가 부디 향이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되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도덕과 부도덕 사이에 방황할 때, 결국 양심을 향하여 돌아 서면서 상대에게 위로를 남기는 것, 그것이 괜찮은 선택같아 보여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