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 시선/인물과 정책

말 그리고 시선 (21세기의 과거 평가 문제)

mylim 2009. 9. 10. 20:32

박근혜의원의 말


-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국보 1호로서 나라의 얼과 혼을 지닌 보물이 불타 무너졌다. 정치인으로서 국민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 뵐 면목이 없다. 이번에도 봤듯이 문화재는 돈으로 환산이 되지 않고, 일단 훼손되면 복구도 불가능하다. 매년 문화재보호에 대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예산 순위에서도 뒤로 밀린다. 2005년 문화재 보호기금을 설치하고자 문화재보호기금법을 발의했는데 아직도 처리가 안 됐다. 이 법은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가 안 되면 17대 국회가 끝나 자동 폐기된다. 나라를 위해서도 통과되기를 바란다. 기획예산처는 ''기금이 통폐합돼 새로운 기금을 만들 수 없다''면서 반대를 하고 있지만 신문기금은 새로 만들었다. 정권이 어떤 데 중요성과 우선 가치를 두느냐는 판단의 문제인데 (현 정권에서) 무엇이 우선 중요했던가를 판단할 수 있다. 2008년 2월 14일 숭례문 화재 사건에 대해...



- 2008년 5월 6일,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과 관련,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이 재협상 밖에 없다면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본회의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서 국민이 걱정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국민들이 걱정한다면 바로 잡는 것이 정부의 마땅한 자세라 생각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 싱가포르를 방문중이던 2008년 7월 17일 현지에서 동행 취재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일본이 엄연한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가르치겠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닌 거짓을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가르치면 국제사회에서 볼 때도 일본이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느냐"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사슴을 가리키면서 저게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처럼 우긴다고 이게 말이 될 수 있느냐"면서 "우리나라도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조치를 앞으로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  2008년 7월 22일 '6.25, 베트남 고엽제 유공자 지원을 위한 입법공청회' 축사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피와 땀과 헌신이 있었다"면서 "피와 땀의 지분이 보장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국민들 가슴속에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뜨거운 열정이 사라진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

 


-  2008년 9월 18대 첫 정기국회를 맞아 상임위로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선택한 소회를 밝혔다. "내가 복지위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중요한 우리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찾고 싶기 때문"이라며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꼭 겪는 삶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라고 말했다.

 


 - 2008년 10월 31일 대구경북과학기술연구원(DGIST) 기공식에 참석히여 "국가경쟁력이 과학기술력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지금 세계는 시장과 국경의 장벽은 없어지고 있지만 과학기술의 장벽은 높아지고 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은 사람과 기술에 있고 무엇보다 사람과 기술의 경쟁력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2008년 1월 5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나라당이 국민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내놓은 법안들이 지금 국민에게 오히려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제가 느끼는 바를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겠다. 지금 야당이 그동안에 한나라당에 협상 제의라던가 이런 것을 거부하고 대화도 계속 거부하면서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있는것은 참으로 잘못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국가발전을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면서 내놓은 법안들이 국민들에게 오히려 실망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제가 당대표하던 시절에 그때 다수당이었고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4대 악법을 내걸고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강행처리하려고 했었다. 당대표로서 그때 그런 점들이 가장 안타까운 일들로 기억이 된다. 지난 선거에서 국민들은 한나라당을 선택함으로서 우리가 다수당이 되고 여당이 되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나라당이 정책을 펴나가도록 하는 데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이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또 동시에 우리를 다수당을 만들어줌으로써 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잘 이끌어주기를 바란다는 그런 책임도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통합을 위해서 다수당인 우리 한나라당이 한걸음 더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지도부에서 그동안 애도 많이 쓰시고 고민도 많으셨고 많이 참으셨지만 다수당으로서 국민 앞에 큰 그림을 큰 모습을 보여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2009년 1월 15일 대한민국 법률대상 시상식에서 "개개 법률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속에 신뢰라는 더 큰 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부인 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당연히 법을 만드는 일"이라며 "그러나 개개 법률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마음속에 신뢰라는 더 큰 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어 "그래야만 진정한 법치가 가능하고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도 있고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권이 사심을 버리고 국민만 바라보면서 노력한다면 결국 국민도 다 알게 될 것이기 때문".


- 2009년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과 최고위원.중진 청와대 오찬에서 한 말

"2월 쟁점법안 처리가 예정돼 있는데,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그리고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사회통합도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이 된다. 정부가 바라보는 쟁점법안에 대한 관점이나 야당과 국민이 보는 관점이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고 "문제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어떤 점이 옳고 그른가, 국민의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 토론하고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덧붙였다.


지금까지 한번쯤 국민들이 함께 보면 좋을 박근혜 홈페이지에 있는 말말말이란 부분을 대상과 주제별로 정리해 보았다. 왕도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만큼 들을 만한, 좋은 말도 많았다. 예를 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피와 땀과 헌신이 있었다면서 "피와 땀의 지분이 보장받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표현은 애국애족을 강조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발언이다. 

그밖에, 실망스런 말도 있었다. 선거 후인 2008년 3월 23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4.9총선 공천과 관련한 견해를 밝히며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지만, 결국 저는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면서 "당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한 말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로, 누구보다도 노련한 정치지도자로 믿고 이미 표를 찍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뒤늦게 속았다고 말하는 것은 당황스런 일이었다.   

 

 한편, 최근에 리영희(1929년 출생) 교수의 <대화>라는 책을 읽었다.  대담 형식으로 엮은 그의 자서전과도 같은 이 책에는 60-70년대에 직접 겪은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읽고 혼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의원은 박대통령의 딸임을 그가 한 말 속에서 여러 번 강조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시대를 살아 온 이 지식인의 묘사는 심각한 혼란을 주고 있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2005년. 한길사 간행>란 책에는  박정희 군부 쿠데타(1961년 5월16일)부터 반공이라는 국시속에 자유를 박탈당하는 과정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쿠데타에 대해서는 ' 내가 7년 동안을 붙잡혀 있던 대한민국 군대라는 것은 이 나라의 어떤 집단보다도 푹 썩은 야만적인 집단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군대가 공명한 선거로써 수립된 민주정부를 탱크로 전복하려 하다니 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지(271페이지).'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후 "1964년 11월23일 밤11시인데 느닷없이 잠자리에서 끌려간 거요. 그 낮에 써 놓고 조간에 기사화된.. 토론 관계 기사를 반공법으로 묶으려...",   

 *참고 :  반공법은 1961년 쿠데타 직 후 제정되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공포된 법

 

반공법제4조제1항으로 들어 간 그는 대공분야 수사요원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사디스트라니까! ... 사디스트가 아니면 인간을 그렇게 벌레처럼 대할 수 없어요. 적어도 생명과 감정과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상대를  그렇게 원수처럼 취급할 수가 없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반공주의의 첨병에 섰던 각종 대공기관 종사자들은 예외없이 사디스트라고 생각해. ...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실존적으로 말하면 그들도 광적 반공주의와 그 체제의 희생자란 생각이 들었어. 그들도 존재론적으로는 소외된 인간이에요. . 극우반공체제란 그 속에 존재하는 모두를 누구 가릴 것 없이 비인간화하는 체제요. (476페이지)

 

민주화 운동을 하던 많은 동지들 중에도 벌방이라는 데 들어가서 이중감옥을 살고 온 사람들은 몇안될 거요. 벌방은 정말 짐승을 만드는 방이에요. (벌방은 가만히 누운 채로 있어야 하고 창문이 없는 방으로 작은 관만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군사독재의 긴 암흑시대에는 친구를 갖는다는 것이 나 자신이나 친구의 목숨까지도 걸어야 하는 인간관계를 말했어. .. 

  

 리영희 교수의 책<대화>는  우리의 과거를 돌아 보게 했다. 그는 1970~80년대 변혁의 중심이었고 폭압적인 시대상황에 맞서 싸웠고 70년대 냉전주의적 사회분위기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 넣은 학자 를 조사한 1999년 말 여론조사에서 1위였다고  한다. 그 조사 결과에 대해 그는 무엇보다도 대중은 속일 수 없고 역사적인 평가는 한 개인의 인생보다 더 길게 남는다는 생각에 숙연해 졌었다고 한다.  

 

보릿고개를 없애고 한강의 경제 기적을 일으킨 1960-70년대, 그 시대가 내포한 어둠의 단면을 경험한 한 지식인의 기록과  그 시대를 이끈 아버지를 둔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성 정치가의 말을 동시에 음미하였다.

 

두 사람 말을 들으며  찾아 오는 이 혼돈을 어떻게 정리하여야 할 지는 바로 21세기에 과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야야 할 지, 두 사람의 말을 놓고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