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뽑아야 할까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우편함에는 선거홍보물이 쌓인다. 누구를 뽑아야 할 것인가? 인물을 보아야 하는가? 정당을 보아야 할까? 사람을 위주로 한다면 얼굴 인상을 볼 것인가? 경력을 볼 것인가? 우리 가족의 경우는 군경력을 중시하는 것 같고 납세 현황도 보는 것 같다.
물론 내가 평소 잘 아는 인물이라면 주저없이 이 사람이다 하고 찍으련만 처음 보는 후보자가 많으니까, 이러다간 잘 모르는 객관식 문제에 번호를 찍는 것괴 비슷하다.
게다가 요즘 천안함 관련 뉴스에 위기를 느낄 법한 데 거리에는 경쾌한 걸음들이 출렁인다. 후보자 유세에도 만일 우리 삶의 조건에 전쟁과 같은 어두운 변화가 찾아 온다면 가장 먼저 희생을 자청할 비장한 표정이나 소리 보다 율동과 미소, 인사가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기사를 보면 갑갑할 때가 있다. 용산 참사 처럼, 재판 결과에 대하여 억울함을 외치는 소리가 기사 활자를 뚫고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비정규직 철도 여승무원 같은, 2004년에 일어난 사건 결과도 어떻게 되었나 하고 보면, 최근 검색에 결과가 안보인다. 노조 활동을 한 비정규직들이 일자리를 잃어 버린 경우도 보인다. 노동력만 가진 이들과 기득권과 가진 자본을 지키려는 사람과의 타협점은 요원한 것일까. 이에 비하면 어느 만큼 재산이 있어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 이들은 어쨌든 밝은 동네에 속한 사람들이다.
오래 전, 지금은 정년퇴직하신 은사님께서 그러셨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모든 식물들은 태양을 향하고 그 방향으로 자란다고. 밝은 세계는 많은 것들을 수렴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까지만 하셨다.
그 반대 방향에 존재하는 대조적인 현상, 그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겨 주신 것 같다.
요즘 선거를 나온 후보자가 어느 곳을 보고 있고 지향하는 지 궁금하다. 자연 현상처럼 해 바라기인가? 아닌가? 후보자들은 나보다 어둡게 사는 이웃때문에, 사회때문에, 국가때문에 가끔 진심으로 울어 본 적이 있는지...
자연 현상처럼, 밝은 곳은 가만히 두어도 번창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잘 자라지 못하는 태양의 반대편에 있는 잎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화분을 누군가 돌려 주어야 한다. 그래서 화분 속의 식물이 고르게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느낀다.
자연 현상을 존중하되, 고른 성장을 위한 수고를 할 수 있는 후보는 누구일까? 나의 경우는 이런 궁금증으로 후보의 이력과 얼굴, 정당을 찬찬히 보고 투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