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며
가정의 달,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며
진홍 모란과 빨간 장미, 그리고 복스런 수국이 곳곳에 피었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 오월을 왜 사계절 중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는지 절로 이해가 갑니다. 꽃은 인간과 같이, 반드시 시들 운명을 지녔지만 한 계절을 화려하게 수놓고 갑니다. 사람은 꽃을 피우는데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감상만 하면 되니, 이 점에서 너나 할 것없이 꽃앞에 평등한 축복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신록을 보면 볼 수록, 잔잔한 평화가 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뉴스들은 그 평화를 흔들어 버립니다.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뉴스라던가 부패로 얼룩진 금융과 검찰이 등장한 정치권 소식들이 그렇게 만듭니다.
오늘 어느 분이 자신의 트위터에 '인간의 일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공감하게 되더군요. 멀리서 사람들 싸움을 보면 희극처럼 재밌을 수 있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비극 그 자체니까요.
가정의 달인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들어 있습니다. 대다수 가정은 한 달에 몰려 있는 기념일을 챙기느라 헉헉대고 바빴지만, 한편 기념할 어린이와 어버이, 스승이 없는 가정들도 주변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가정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경우마저 있습니다. 가정의 달, 이런 축하할 대상이 자리에 없는 가족을 잠시 생각해 봅니다.
1. 어린아이가 없는 가정에 대하여
불가리아 마을이 저출산으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안들리다 어느 순간에는 일자리를 위해 마을 전체가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마을이 되어 버렸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우리 농촌도 다니다 보면 폐가를 간혹 볼 수 있으니, 이 이야기가 아주 남 이야기는 아닙니다.
출산률은 나라입장에서 보면 국가를 지탱하는 세입원의 고갈과 운영구성원들의 부족으로 이어지는 문제지만, 한 가정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는 그 가정의 지속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아이는 처음에는 부부로부터 태어났지만 점점 더 가정이라는 작은 공간을 유지하고 보존하게 하는 중요한 끈이 됩니다.
저의 경우도 아이가 우리 가정을 밝게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아이는 지방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는데, 하루는 족욕기를 소포로 보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예전에 본 족욕기계를 상상하면서, 기계에 단추가 여러 개 달려 있는 비싼 족욕기를 기다렸는데, 받아보니 발모양이 바닥에 그려진 프라스틱 양동이였습니다. 우리가 기대한 족욕기는 아니었지만 따뜻한 물을 받아서 발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가 풀립니다. 그리고 부모를 생각하며 이 양동이를 사러 돌아 다녔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도 발처럼 따뜻해지는 듯했습니다.
다른 집의 어린 아이 이야기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곤 합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한 아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라며 아파트문의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었답니다. 하루는 식구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아이 친구가 들어 오더랍니다. 아이가 그랬는가 봅니다. '우리 집에 놀러와. 비밀번호는 ####야.' 그 일이 있은 후, 아이 엄마는 비밀번호를 바꾸느라 무척 바쁘다는 데, 아무튼 아이의 순진함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곧 아이는 그런 순진함이 사라지겠지요...
이렇게 귀여운 아이는 저절로 자라지는 않습니다. 사람 손이 필요합니다. 때되면 먹여야 하고 아프기라도 하면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돌보아야 하고, 직장을 나갈 때는 가족눈치와 직장눈치를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아이를 유치원이나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 것은 아이가 의사표시를 할 수 있게 된 후가 좋을 듯합니다. 아직 제대로 의사 표현을 못하는 아이가 다치면, 아이를 보는 선생님도 미처 못보았다고 하고 아이도 말을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어디를 다쳤는지 모른 채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아주 어릴 때 아이를 돌보아 주던 사람이 바닥에 떨어뜨려 불구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돌보던 이가 책임을 질까 두려워, 아이가 우는 원인을 빨리 말해 주지 않아 결국 정신지체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아이를 남이나 기관에 맡기는 것은 아이가 의사표시를 어느 만큼 할 수 있을 때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 때까지는 국가나 지자체가 교육비 보조를 개인에게 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아직 말을 못하는 어린아이는 믿을 수 있는 친척 등에게 부탁하고 기관이 아닌 개인에게 비용을 드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지요,
다시말해, 누가 내게 어떻게 했다고 설명하는 때까지는 엄마 혹은 친지에게 유급휴가와 비용지원을 해주는 것이 결국 멀리 볼 때, 건강한 국민을 만드는 길이라고 봅니다.
저도 이제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어린이날이 별 의미가 없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많이 낳지 않은 입장이긴 하지만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조금은 알고 있고,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주는 기쁨도 조금 압니다. 아이는 처음에 부부사이에서 수동적으로 태어났지만 자랄수록 가정을 유지하는 책임감을 어른에게 부여합니다. 사회에서 '함께 하는 삶의 무게와 기쁨'을 골고루 경험하게 해 주는 존재가 바로 아이같습니다. 어른의 미래는 점점 줄지만 아이의 미래 공간은 더 남아 있기에, 어른은 아이의 등뒤에 서 있는 미래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래서 늙어감을 감사히 여기며 자식을 위해 가장 선하고 좋은 선택을 오늘도 고민하며 살게 됩니다.
(2012년 부처님 태어나신 기념일 아침에)
2. 어버이가 없는 가정에 대하여
2010년을 기준으로 나온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어버이 중 한 사람만 존재하는 가정이 160만 가구라고 합니다. 전체가구의 9.2%에 해당하는 이 한 부모 가족형태는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여성이 가구주인 모자가구가 상당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부모가정의 78%는 여성이 세대주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부동산을 하며 혼자사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교통사고로 갑자기 남편을 잃었는데, 그 때 충격으로 5년간 집밖을 안나왔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와 자신만 세상에 달랑 남은 외로움과 슬픔이 너무 깊어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감때문에 집밖을 나가지 않던 그 때는, 비가 오는 주말을 싫어하지 않게 되더랍니다. 비가 오면 야외로 놀러 가는 가족이 줄 거란 생각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달, 부모님께 꽃을 드리는 어버이날, 한 분만 계신 집이 주의깊게 보면 열가구 중 한 가구 정도입니다.
어머님을 떠나보낸 자녀가 습관처럼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눌렀답니다. 아무도 안받을 때, 이 세상에 전화를 받으실 어머니가 안계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아직 저는 통화가 가능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전화를 안했습니다. 친정어머니께는 자주하는 편이지만 시댁에는 그에 비해 적게 했었습니다.
홀로 되신 친척집을 방문했습니다. 남편이 돌아 가신지 일년 쯤되는 무렵이었습니다. 그 집에 점심때 도착하여 12시가 되었는데 시계가 말을 했습니다.
12시 정각입니다. ...
시계가 말을 하자 친척분이 그러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너무나 적적하여 시간을 말하는 시계와 생활하며, 그 말대답이 습관이 되신 듯 보였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어버이날 연락드릴 부모님이 계십니다. 아무 때나 전화를 걸어도 통화가 되는 부모님이 양가에 모두 계시고 전화를 하면, 얼마나 힘드냐며 받아 주십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어버이에 대해서는 더욱 크게 울립니다.
어버이날이 있는 오월, 어버이가 계시는 가정은 전화라도 자주드리고, 어버이가 없는 가정에 대해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편견 등의 피해에 대해 돌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부터 이 오월이 다 가기 전, 시계와 대화하며 사시던 친척께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부동산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혼자이신 그 분께 문의하려 합니다.(2012.5.29. 임미영 씀)
3. 스승이 없는 가정에 대하여
맏이인 저는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들께 의논드리면서 결정한 경우가 많았기에, 개인적으로 부모님 다음에 감사하는 분이 선생님이십니다. 7년전까지만해도 연락되었던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이제는 연락이 안됩니다. 못뵙고 있지만 선생님께서 뜨게질로 만들어서 주신 발판과 휴지통 싸개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선생님 생각을 하는데 제가 좀더 사는 게 나아지면 찾아 뵈야지 하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요즘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 교육수준이 높아져, 왠만한 사상가나 철학자, 정치가, 교육자는 저리 가라 할만큼 박식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저 역시, 영어나 중국어로 책을 읽고 우리나라 책에 대해 비판도 가능하니, 이 모든 것은 사실 그 분야의 가르침을 받은 덕분입니다.
교권이 과거와 달리 떨어졌다고 하는데 저로서는 선생님 교육이 성장에 절대적이라고 봅니다. 제게는 첫번째 존경의 대상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어떤 위대한 인물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저를 가르치신 선생님들이십니다.
그런데 쉽게 믿어지지 않는 소식도 있습니다. 지방에서 일어난 일인데 지금도 저는 설마 하는 마음이 드는 내용입니다.
사업을 하는 학부형이 담임 선생님을 찾아 뵈며 봉투를 드렸는데, 그 날 거래처에 줄 100만원 수표와 선생님께 드리려 가져간10만원 수표 봉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100만원 수표가 큰 돈이라 학부형은 고민 끝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답니다. 물론 돌려달라고 말하려...
그랬더니 선생님이 예상과 달리 '어머니, 일년 분으로 알고 받을께요.'라고 하여, 결국 돌려 받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학부모의 어이없는 표정이 스치네요.
스승의 날, 이미 학교를 떠나 정년을 맞으신 선생님을 찾는 제자가 전국에 얼마나 많을지... 그 것은 꽃집을 가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번 스승의 날에 꽃을 사러 화원을 갔었습니다. 지방에 사는 제자들이 꽃통신판매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사는 자신의 지역이름을 붙여 대구제자 일동이라고 서울에 계신 스승께 보내는 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지역이 아니라, 영원한 제자라고 썼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스승과 제자 관계는 변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리본을 달았습니다. 지금도 스승은 지식이 아니라 삶에 필요한 지혜를 주십니다.
스승의 날에 기억할 스승이 있는 가정이라면, 스승이 주시는 지혜를 닮으려 노력한다면, 지금과 같은 교권추락이 없을테고, 선생님 스스로도 존경에 맞지 않는 촌지를 거절하는 문화가 성숙하리라 봅니다. (2012.5.29 새벽에 임미영 씀)
4. 위기의 가정에 대하여
지나간 신문을 들추다 보니 지난 1월 결혼전략설명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엄앵란여사의 사진이 보였습니다. 같은 지면에 결혼비법들으려 몰려든 많은 부모들과 2012년 결혼성공5계명에 대한 소개도 있었습니다. 결혼5계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번째 계명은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만나고 싶은 이상형그룹모임에 참여하고, 두번째 계명은 세 번 만난 후 결정하도록 하며. 세 번째는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미래 인연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남이 그려 준 배우자상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상형을 만들어야 하고, 다섯 번째는 상대방이 50% 이상 마음에 들면 상대방의 약점보다 강점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5계명을 보면, 우선 이상형 그룹에 접근하여 세 번 이상 만나야 하고 언제 올지 모를 결혼 기회를 잡기 위해 자세를 갖추고 있으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상형 그룹에 접근 기회를 갖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결혼전문가의 역할인데 결혼중개업자들은 회비를 낸 회원에게 세 번 소개해줍니다. 그런데 한번 정하면 다음이 어려운 것이 결혼이기에, 세 번은 아무래도 부족하여 이래저래 심사숙고하다보면, 시간이 흐르게 됩니다.
깊이 생각할수록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결혼입니다.
실제로, 결혼 결정이 중요하고 어렵다는 것을 뒷바침해 주는 것이 바로 늘어나는 이혼한 1인 가구 비율입니다.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배우자가 있는 성인 비율이 79.9%에서 66.6%로 감소했다고 합니다(주간경향, 2012,5.15. 975호). 다시말해 배우자 없는 가정이 20%에서 34%로 증가했다는 뜻이니, 10년 동안 위기의 가정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모든 가정은 위기의 가정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50년 넘게 함께 살고 계시지만 아버지 명의의 명패를 떼지 않으려 참고 살았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부모님이 별거하고 계시면 양쪽을 따로 방문하면서 챙겨야 하는 데,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의 집 처럼, 일단 어렵게 결정해서 한번 이룬 가정이라면, 그 후에는 자식 입장에서 부모가 거취를 결정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뿔뿔이 흩어진 가정의 자녀가 어떻게 온 가족이 에너지를 쏟아 붓는 입시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까요?
부부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위기로 불안정한 가정도 자녀에게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몇 달전, 고도원의 깊은 산 속 옹달샘이란 곳에 가서 알았습니다. 그 곳에서 진행하는 한 교육프로그램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지막 날 자신들의 <꿈너머 꿈>을 발표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듯한 남학생이 장래 꿈을 발표했습니다. 커피 바리스타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부모님께 일주일에 한번 커피를 타드리는 게 좋아서라고. 그런데 그 학생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주말에 부모를 만나며 사는 현실이 설움으로 북받친 모양이었습니다. 부모가 아마 경제적인 이유로 그렇게 떨어져 사는 상태가 아닐까 추측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부모님께 일주일에 한번 커피를 타드리는 게 좋아서 바리스타가 꿈이 되어버린 소년,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그리우면 그런 꿈을 갖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 노래 가사 중에 '저 하늘이 너를 사랑해 너를 먼저 데려가면~ 너를 가슴에 묻고 사랑을 키우겠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영남이 부른 노래 (서로 달라졌다고 말할 용기가 없을 뿐, 아~ 저만치 와 있는 안녕이 이젠 슬프진 않아...) 그런 가사도 있습니다. 각각 결혼과 이혼을 예고한 가사입니다.
여러 가정의 이야기, 여러 유행가가 주위에 있지만 아무리 고난과 역경, 후회가 있다 해도, 일단 결혼했다면 오직 죽음만이 갈라 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2012.5.29.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