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 이덕무와 그를 소개한 정민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에는 책만 읽는 멍청이를 간서치(看書癡)라고 부르고, < 간서치전>을 쓴 옛학자, 이덕무를 소개한 부분이 있다.
이덕무는 지독한 책벌레여서 마치 기갈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고, 가난하여 책 살 돈이 없어서 남에게 빌려 보았다고 한다. 열손가락이 모두 동상에 걸려 손라락 끝이 밤톨만하게 부어오르고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빌려 읽은 책에서 중요한 부분을 베낀 것이 수만권이고 파리대가리만한 글씨로 베낀 책도 수백권이라고 한다.
그가 그렇게 책 읽기에 집착한 까닭은 서얼출신이라 처절한 가난과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의 굴레를 이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읽은 것을 어디에 쓸지도 모르며, 무기력한 간서치와 같았던 이덕무는, 나중에 정조가 세운 규장각에서 일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문서와 자료를 정리하는 검서관이었으나 점차 인정을 받아 정조로부터 책교정말고 스스로 저작을 남기도록 권면받기에 이르렀다. 그가 세상을 뜨자, 국가의 돈으로 그의 문집을 간행할 만큼, 이덕무가 역사에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이덕무를 소개한 후, 이 책의 저자가 그(이덕무)에게 압도당한 이유를 밝힌다.
' 그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맑은 삶을 살려 애썼던 그의 올곧은 자세가 나는 무섭다. 아무도 알아 주는 이 없고, 알아 줄 기약도 없는 막막함 속에서도 제 가는 길을 의심치 않았던 그 믿음이 두렵다.'
또한 저자는 인터넷 시대, 세계의 정보를 책상위에서 만나면서도 혼란을 느끼는 이유를 '거기에 나는 없고 정보만 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취직과 돈벌이, 영어가 삶의 목표가 된 세대가 소중한 가치와 자존조차 버릴까봐 우려한다. 그런 우려와 함께 저자는 이덕무를 그리워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 그 처참한 가난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았던 맹목적인 자기 확신, 독서가 지적 편식이나 편집적 욕망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읽는 경륜으로 이어지던 지적 토대, 추호의 의심없이 제 생의 질량을 바쳐 주인 되는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의 내면풍경이 나는 그립다.'
그러한 내면풍경을 그리워하는 지식인이 현대에도 있구나...
나는 따뜻한 눈길과 함께 책을 덮었다.
참조, 미쳐야 미친다. 정민 지음, 2004.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