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독서

설일(雪日)- 김남조

mylim 2009. 9. 7. 10:55

 

                      설일(雪日)

                                              - 김남조-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한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이 시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세상사는 마음가짐을 다듬는 듯하다.

 

 지금은 9월, 오늘은 가랑비가 내린다.  한 해가 얼마 안남았다는 조급함 속에

 마음도 흐뜨러지기 쉬운 때, 

 이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바라본다.

 

 '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 란 표현을 바라본다.

 

 

                          은총의 돌층계에 앉아서 2009.9.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