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독서

정 다산의 공부에 관한 생각

mylim 2007. 11. 6. 09:26

다산이 귀양지인 강진에서 1802년2월17일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중의 한 부분이다.

 

 이 달을 맞아 더욱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겠구나.

 내가 너희의 의중을 짐작컨대 공부를 그만두고 싶은 심정인 것 같구나. 정녕 그러하다면 너희는 무식한 백성이나 우매한 사람이 되려느냐. 이름있는 선비집안으로 행세할 때에야 글을 잘하지 못하고 혼인만 잘하면 군대를 면할 수 있지만 폐족으로서 글까지 못한다면 그 모양새가 어찌되겠느냐.

 글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배우지 못하고 예절을 모른다면 새나 짐승과 다를 바 없다. 폐족 중에서 흔히 뛰어난 인재가 나오는데,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 과거에 응시할 수 없다고 해서 경전 읽는  일을 그만두고 책읽는 일까지 소홀히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참조, 윤동환, 2002, 132페이지)

 

위 편지는 폐족으로 전락한 상황, 과거에 응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두 아들에게 다산이 공부가 왜 계속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한 다산 본인은 경집220권, 문집237권을 남겼다.

 

한국사를 전공한 어느 이에게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이름을 물었더니,왕과 장군이 아니라 바로 다산 정약용을 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강진을 가족과 갔었는데 도착하니 주위가 너무 어두워서 초당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다산 초당은 지금도 강진 앞바다를 보면서 잘 있는지, 궁금하다.

 

 한자가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저술을 남겼다고 다산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너무도 오랫동안 한 곳에 앉아서 글을 써서 엉덩이가 곪아서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벽에 선반을 만들어 놓고 서서 저술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오른 쪽 팔꿈치에 옹이가 박혀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참조 : 정약용, 윤동환, 2002, 다산기념사업회).

 

다산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엉덩이가 곪고 벽에 선반을 만들어 서서 저술을 할만큼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가. 자리나 명패를 바라보면서 공부하지는 않았는가. 그동안 변변한 책이라도 한권 썼는가......

 

'글항아리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을 쫓는 아이  (0) 2007.12.31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읽고  (0) 2007.12.18
김용익의 꽃신  (0) 2007.10.30
다시 보는 평론 : 유시민의 '대학의 남성할당제'  (0) 2007.09.10
한국의 명문  (0) 2007.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