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여승무원 박모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후였다.
나는 이 여승무원들을 2004년에 만났다. 정확한 날짜는 3월 15일, 그들이 입사하여 희망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던 때였다. 서울고속철도열차승무사무소가 그들의 기관명이었고 나는 그 곳에 가서 300명을 대상으로 21세기 양성평등과 성희롱예방문화정착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었다.
당시 철도여승무원들은 비행기 승무원처럼, 선망하는 직업인이 되는 멋진 인생이 그 들 앞에 놓여 있었기에 눈동자는 빛났고 분위기가 무척 밝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 온 자부심과 희망이 가득찬 신입사원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어렵게 들어 온 직장, 앞으로 뻗어 가는 일만 있을 줄 알았다.
그 후 나는 가족 사정으로 상하이로 가게 되었고, 2006년에 서울에 잠시 나왔다가 지방을 가기 위해 서울역을 이용하게 되었다. 서울역에는 그 때 그 여승무원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딸들의 어머니마저 서명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는 딸이 입사했다고 자랑스러워했는데 이렇게 되어 속상하다면서 서명을 부탁했다. 서명으로 요구하는 것은 정규직으로 철도공사에 채용해 달라는 것.
지금까지 알려진 이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KTX 여승무원은 한국철도유통에 소속되는 조건으로 채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철도공사의 비용절감때문이었다. 고속철도 개통을 앞둔 상태에서 많은 여승무원들은 "2년내 정규직 전환"이라는 약속을 받았었지만 2년이 다가오자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한국철도유통 정규 직원이 되어야 했다.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여승무원들은 KTX관광레저로의 정규직 전환 제의를 거부하고 한국철도공사의 고용을 요구하다 2006년 5월 해고됐다. 재판부는 1, 2심에서 "KTX 승객 서비스 업무 위탁은 위장도급에 해당하기 때문에 한국철도공사가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된다"며 이들에 대한 해고는 무효로 판단했다. 즉 한국철도공사 근로자 지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2015년 2월 "KTX 여승무원을 한국철도공사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다시 열리고 있고, 양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여승무원들 주장> • 입사 당시 "정부가 운영하는 철도청이므로, 일단 계약직으로 입사하지만 2005년엔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다, 준공무원 신분으로 정년도 보장받을 것이다, 항공사 스튜어디스 수준으로 대우하겠다"라고 하고 KTX 관광레저로 위탁 고용하였다. • 여승무원만을 위탁계약 형태로 간접 고용한 것은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것인 데다 성차별적이다. • 비정규직으로서 불안정한 고용환경에서 오는 차별과, 위탁경영으로 인한 저임금 문제가 있다. <한국철도공사측의 주장> • 계약당시 한국철도유통의 비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것에 자필 서명하였다. • 1년 뒤 정규직 전환 가능성도 현 소속사인 철도유통의 정규직이란 의미일 뿐 공사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건은 300명인 여성을 집단적으로 외주화하여, 고용조건을 열악하게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다. 특히 철도라는 공공영역에서 대규모 여성을 비용절감이라는 명목으로 외주화하였다.
그들을 입사한 시점에서 본 나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그들은 다가 올 미래에 대해 희망과 호기심으로 가득찼었다. 어렵사리 들어 온 그 직장에서 입사를 준비한 시간과 미래 희망이 백지화하는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소송으로 십여년을 보내게 될 줄은 정말 예상밖의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되어 있고 여성가족부가 존재하는 나라이다. 그 협약, 이 정부조직이 과연 이 소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동안 어떤 역할을 했는지.. 여성의 경력단절이 인적자원 밖에 없는 우리 나라에서 커다란 손실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1,2심을 승소한 사건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판결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법원 판사가 고속철도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고 가정할 때, 여승무원에게는 남승무원과 다른 기대를 할런 지 묻고 싶다. 여승무원은 남승무원과 소속이 다르고 안전교육이 아닌 서비스 교육만 받았다며, 본인을 위험에 방치한다면 수긍할 것인가? 승객은 철도승무원에 대해 남녀를 불문하고 편안함과 안전함을 도와 주리라 기대한다. 대법원은 생명보호라는 엄중성을 염두에 둔다면 비정규직화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마땅하다.
"열차팀장과 여승무원은 코레일 스케줄에 따라 함께 움직인 만큼 독립적 노무관리가 존재할 수 없었다"는 기사도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눈물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이왕이면 웃음 꽃이 피는 세상으로 가야 한다. 특히 여성가족부는 여성의 빈곤화 예방, 불평등 해소를 앞장서서 해결해야 하는 부서이다. 그런데 그 동안 정부(여성가족부)는 이들의 눈물과 절박한 사정에 얼마나 귀기울이고 앞장서서 도왔는지 궁금하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건을 다루는 분들이 이 글을 보기 바란다.
이 글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견해일 뿐, 나는 어느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양성평등을 교육한 입장에서, 그 희망의 공간에 그들과 잠시나마 같이 있었다는 이유때문에 쓰는 것이다.
이 소송건이 비용을 내세워 여성의 고용 조건을 열악화해도 무방하다는 선례로, 그래서 비정규직 여성들이 소송 끝에 죽음마저 선택한 사례로 결론나지 않길 바란다. 다시 한번, 재판관들이 여승무원들이 승소한 1심 판결문(아래 글)을 면밀히 검토해 현명한 판단을 내려 주길 원한다. 여성가족부 장관도 이 판결문을 잘 읽어보시고 이 사건이 승소할 수 있도록 돕고 박근혜대통령도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란다. 이 소송을 제기한 여성들은 해고가 무효로 나오지 않으면, 경력단절여성이 되고 만다. 그와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귀한 인적자원이 사장되는 손실로 남는다.
2008년 12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판결(1심 승소)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철도유통에 대해 "피신청인이 그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이고 "채용 면접관으로 피신청인 소속 간부가 직접 참여한 바 있으며, 수습교육을 직접 실시하고 열차팀장이 직접 업무 평가를 실시했다"는 등의 정황을 인정하고 "철도유통은 형식적으로는 자신의 사업을 수행한 것과 같은 외관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피신청인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고, 오히려 피신청인이 신청인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수준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KTX 여승무원들과 피신청인 사이에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됐다고 본다"고 판단하여 KTX 승무원들이 코레일에 대한 근로계약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
(2015.9.1. 임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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