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는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정치가(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간 영국 수상으로 재직)로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복지국가의 정책축소에 관한 논의에도 그녀의 이름이 들어 있다.
1925년생인 그녀는 1959년 영국 의회에 들어가 처음에는 의석뒤 자리(backbenchers)에 앉아 있었으나, 연설문없이 즉석 연설을 호소력있게 함으로써 차츰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의회내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유능함을 읽고 대처를 의석의 앞쪽(a front -bench position)으로 나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Edward Heath이다. 보수당을 이끌던 그는 대처를 교육부장관으로 임명하였고 대처는 성장한 학생들에게도 지급되던 우유의 예산을 줄여, 초등학교건축과 학교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그 기금을 사용하였다.
1975년 보수당의 리더 선거가 있을 때 대처는 한때 그녀를 이끌어 준, 그가 존경했던 Edward Heath의 경쟁상대로 출마했다. 제1차 투표에서 130대 119로 대처에게 패한 그는 굴욕감을 느끼고 사임했다. 그 때 대처가 Edward Heath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를 언제나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동정이란 영역은 없다.
"I'll always be fond of dear Tead, but there is no room for sympathy in politics."
49세때 여성으로서는 영국 최초로 당을 이끌게 된 대처는 그 후 1979년 5월3일, 역사상 최초로 여성수상에 오른다. 대처의 당선일은 세계를 바꾼 100일 가운데도 속해 있고, 당선만이 아니라 훗날 20세기에 가장 장기 집권한 정부리더로도 기록되었다.
대처는 출마당시, 조세를 감소시키고 노동조합 세력에 한계를 그었으며, 정부규제를 줄임으로써 사회주의 복지국가로 영국이 미끌어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고 약속하였다. 따라서 수상에 오르자 항공, 전화, 롤스로이스 자동차회사를 매각하여 오동자와 대중에게 매각하기 시작했다. 공공주택도 포함하였다. 소득세율은 33%에서 25%로 낮추었고 최고세율을 83%에서 40%로 낮추었다. 이러한 정책방침을 대처리즘으로 부르는데, 이 새경제정책으로 부터 모두가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정부지원의 결여로 파산과 실업, 그로 인한 폭동이 이어졌다. 대처리즘은 국영기업을 사유화하여 정부의 몸집을 줄임으로써 세계경쟁력을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 한편 사회분열, 빈부격차의 확대, 실업과 범죄률을 상승시켰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대처의 주요정책수단은 통화팽창억제정책으로써 하이에크와 프리드만 두 경제학자가 그 중심축이었다.
하이에크는 계획화와 사회주의는 인간을 노예로 이끄는 것(저서, 노예의 길)이라고 비판하면서 참다운 개인의 자유는 작은 정부아래서 자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리드만은 복지국가의 낭비와 비대해지는 관료기구를 비판하면서 복지는 타인의 돈으로 자기를 위해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비용절약유인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통화공급량을 관리하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작은 정부를 지지하였다.
이 두 학자의 이론은 영국정부가 노사관계에 처음으로 개입한 공장법(1802년)이래, 요람에서 무덤까지(A cradle -to- grave)를 내세워 질병, 의료, 실업, 고아 노령, 출산, 산업재해, 장의혜택을 마련한 영국정부의 정책기조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대처는 정부에 대한 요구가 지나쳐서는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최소한의 국가를 지향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대처의 복지축소는 그 이전에 이미 성숙한 복지단계를 지나온 시점에서 행하여진 것이므로, 복지단계가 영국과 다른 개발도상국에 대처리즘을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또한 중국의 한 경제전문가의 주장에 따르면, 세계경제의 피라미드에서, 영국(금융강국)을 미국(IT강국)다음으로, 즉 세계에서 두번째로 경쟁력있는 국가로 평가하면서, 영국이 그러한 경쟁력을 얻게 된 분깃점을 대처의 사유화작업으로 꼽는다.
철의 여인(Iron Lady)라고 불리운 그녀는 자신에 대한 철(강하다)의여인이란 표현에 이렇게 불만을 표시했다.
"여성이 강한 경우는 거슬리게 여기지만, 남자가 강하면 그는 멋진 사람이 된다"
"When a woman is strong, she is strindent, if a man is strong, he is a good guy."
마거릿 대처는 11년간 장기 집권을 하였고 그 시기에 일관되게 흐른 정책에 대하여 대처리즘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대처의 과업에 대해서는 복지시각과 경제시각에서 엇갈린 평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수상으로 일하던 시절, 영국병으로부터 벗어나도록 국민의 정신을 변화시키려 하루 5시간을 자면서 일한 그 수고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지 않았다.
참고문헌 : Women who led nation?, 1999. Joan Alxelrod Contrada, Oliver Press.
현대국가의 흥망과 21세기 한국의 전략적 국가경영, 1994. 김석준, 법문사.
세계를 변화시킨 100일,2006, 중국싼시사범대학출판사, .
복단대 경제학과 강의안, 2007.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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